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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5. 스토너

sve.pdf 2025. 3. 4. 16:11

 

마땅히 읽을 책이 없다기보다는 술술 읽히는 책이 없어 이것 저것 열어보고 30페이지 쯤 읽다가 끈 것만 4권째 ,, 드디어 5번째 완독을 했다.

스토너

호밀빵을 아무 잼이나 소스 없이 그냥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것 같은 책이었다.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책은, 그렇다 할 엄청난 사건이 아닌, 오히려 매우 성실하고 인내심이 대단한 남자의 평범한 이야기다.

그러나 너무 올곧아 우적우적 씹다보면 목에서 무겁게 넘어가는 마른 빵같다.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디스 .. 와 결혼을 하고 교수가 되고 딸을 낳고 연구를 하고 책을 썼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성급한 결혼은 실패였고, 그 덕분에 좋은 아버지로 살지도 못했으며, 부모님은 고향에서 늘 그렇듯 일을 하다 죽고, 운명처럼 만난 여자는 떠나보내고, 학생과 동료 교수로부터 인정받지도 못한다.

모든 순간 속에서 스토너는 미련하리만큼 쉽게 포기하고 무딘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보면 스토너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를 비웃기도 하고, 정말로 사랑하는 것을 놓치기도 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스토너 전담 일진들은 내 속을 뒤집어 놓는데 스토너는 의연하다. 아니 의연한 척 하며 외면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계속 읽게된다. 스토너가 답답하고 미련하고 무책임해보이지만 계속해서 그의 삶에 몰입하게 된다. 아무래도 그의 삶이 잘못되지 않아서다. 그의 노쇠한 모습이 묘사되는 순간부터는 내 폐활량이 의심스럽고 먹먹하다. 온통 실패만 했는데도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들로부터 온 약간의 행복이 측은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넌 무엇을 기대했나? 라는 스토너의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스스로도 그의 인내가 때로는 비겁했다는 것을 알지만 기다리는 바가 있었고 그것이 결국에는 무의미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이 책도 출간 50년 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라고 한다. 대단한 인내는 책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자신을 노인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가끔 아침에 면도를 하다가 거울을 보면 그 속에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마주 바라보는 얼굴에 결코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기괴한 가면 속에서 눈빛만 선명했다. 마치 자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변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하얗게 세어버린 그 텁수룩한 눈썹, 헝클어진 백발, 앙상한 뼈 주위로 늘어진 살, 나이 든 척하는 깊은 주름살들을 모두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이디스 역시 스토너의 입장에서 쓰여진 인물이라 그녀의 내면이 드러나는 부분이 없어 무작정 빌런이라 칭하긴 어렵지만.. 스토너에게 끊임없는 이기심과 고통을 준 이디스에 대해서도 끝내 내가 더 사랑했더라면, 하고 말하는 것이 오랜시간 눈에 밟혔다.

우리가 하루하루에 있어서 그토록 바라거나 미워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도, 일도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인내한 스토너에 나를 투영하게 되어 결코 스토너를 실패자라 부를 수 없는 ,, 함께 먹먹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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